요즘 저는 몇몇 교수님들과 매주 목요일마다 양자역학을 같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 분들은 각자 다른 전공의 교수님들이신데, 양자역학을 기독교적인 관점으로 어떻게 봐야 하는지 알고 싶으셔서, 같이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공부 방법은 간단합니다. 책을 같이 읽고, 그 책에서 모르는 내용들을 질문하고, 그것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아마 제 전공이 물리라서, 양자역학을 공부하자고 한 것 같기도 합니다.
이번 주 같이 읽었던 부분은 중첩과 슈뢰딩거의 고양이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질량이 아주 작은 입자들은 파동과 마찬가지로 양자적인 성질을 가지게 됩니다. 즉 두 개의 서로 다른 상태가 중첩을 이루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관찰하는 순간, 그 중첩을 이루고 있던 상태가 깨져서 하나의 상태가 됩니다.
이것은 아주 놀라운 현상입니다. 관찰하기 전에는 중첩을 이루고 있다가, 관찰을 하기 시작하면, 중첩이 깨지다보니, 학자들은 그 이유를 알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알아보니 우리가 관찰하려는 순간, 우리가 보낸 그 시그널이 그 입자의 중첩을 깨고 하나의 상태로 정해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보고 어떤 교수님께서 이렇게 적용하셨습니다. “누가 나에게 어떤 의견을 물어 보기 전에 나는 여러 의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누가 물어 보아서 대답하는 바람에 내 의견이 하나로 정해져 버렸다”. 아주 놀라운 적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비슷하게 신앙적으로 적용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기 전까지,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도 있고, 받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일단 심판대 앞에 서면, 한 상태로 무조건 정해지게 된다”
맞습니다. 심판대 앞에 서기 전까지는 얼마든지 구원의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 그런데 심판대 앞에 서면 하나로 정해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심판대 앞에 서기 전까지, 두렵고 떨림으로 계속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번 주에도 저는 이렇게, 양자역학을 공부하면서, ‘끝까지 하나님을 계속 잘 믿어야 되겠다’라고 다시 한번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도 그런 다짐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정말 예수님을 잘 믿어서 꼭 구원에 이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